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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경제사상사 1 - 초기~고전경제학

by 알보도 2024. 1. 25.

 

경제사상사(經濟思想史)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일어난 정치경제학, 경제학의 기반 사상을 다루는 역사적 학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학적 사고까지 들어가기도 하지만 근대에서는 고전 경제학, 그중에서도 애덤 스미스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제 이론이나 사상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1. 초기의 경제사상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경제학 문서는 인도의 차나키아가 쓴 아르타샤스트라입니다.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노동층에 대한 토론을 경제적 학문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2.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중세 이후 유럽의 국가 경제에 대한 실제적 사상/정책을 말합니다. 중상주의는 16세기~18세기까지 유럽에 만연하였습니다. 콜럼버스와 여러 탐험가들이 15세기 이후 지구 여러 나라에 무역을 하기 위해 새로운 교두보를 창설하였습니다. 더하여 경제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얻은 국가들이나 왕들은 그들의 위상을 강화시키기 위해 더 강력한 군사력을 원했습니다. 이 이론은 국가 군사력을 활용하여 시장이 보호되도록 유지하는 보호주의를 유발하였습니다. 해당 이론의 이론가들은 무역은 여러 나라에 동시다발적인 이익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돈, 귀금속, 금 등이 유일한 부의 원천이었으며 한정된 재화 속에서 국가 간의 배분을 필요로 하기에 관세가 수입을 장려하였고, 해외로 돈을 반출하는데(외화의 소비를 약화시키는데) 쓰여야 한다고 주장되었습니다.

 

3. 영국의 계몽주의

해당 사상의 철학자들은 경제적 문제에 많은 고심을 하였습니다. 데이비드 흄, 존 로크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계몽주의 철학자들입니다. 데이비드 흄은 중상주의에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는 무역의 유리한 균형을 위해 애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수출의 어떠한 이익도 금, 은, 기타 기준이 되는 재화의 수입으로 납부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통화의 공급이 늘어나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수입과 균형이 이뤄질 때까지 수출의 감소로 이어질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버나드 맨더빌은 인간의 행동을 비천함과 귀함으로 양분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의 삶은 정부와 사회관계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각종 이론가들이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사치스러운 생활과 연관 지어 발명과 자본을 통한 사회를 행동과 진보로 이끌어내는 것은 악덕이라고 주장합니다.

 

4. 중농주의

중농주의는 왕실의 제정 고문으로 왕국의 회계를 전문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그들은 회계에 대한 개념과 경제적 사상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프랑수아 케네가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무역과 산업이 곧 부의 원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임대료, 구매, 임금의 방식으로 경제적 유입을 이뤄낸 농업의 이득이 근본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더하여 규제는 각 계층의 소득 흐름을 방해하여 경제 발전을 지연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생산적 계층(농부)에 부과되는 세금은 비생산적 계층(토지주)에 더 많이 부과되는 방식으로 줄여나가야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유동성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자크 튀르고는 파리에서 태어난 인물로, 앞선 케네의 이론을 이어나갔습니다. 튀르고는 사회를 총 3개의 계층 - 생산의 농업 계층, 봉급생활의 계층, 토지 주인의 계층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상업과 산업이 자유로워져 간섭받지 말고, 토지의 순수 생산액에만 세금을 부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5. 고전 경제학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도덕 철학가이었고 첫 번째 책은 '도덕 감정론'입니다. 그는 인간의 윤리 체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통해 발전하고 맞고 틀리고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 다른 이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국부론'을 출판할 시기에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현재처럼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의 개인 통제는 매우 흔한 일이었고, 세금과 규제는 체계적인 이론이나 계획 없이 자의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시장의 자생능력을 강조하였고 개인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보고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국가가 굳이 개인의 경제활동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수요와 공급법칙에 의한 가격 조정을 통해 균형을 이뤄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분업의 이점과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노동 가치설을 설명하였습니다.

 

향후 마르크스, 맬서스 등이 스미스의 가치론, 분배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제레미 벤담은 다소 급진적이었으며, 공리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이자 동물 권리 운동가이기도 하였으며, 언론의 자유, 자유무역, 건강보험 등을 지지한 현대에선 일반화된 서비스나 이론을 지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첫 저서는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며 영국의 법에 대한 윌리엄 블랙스톤의 논평에 대한 비판의 글이었습니다. 또한 1789년에 그는 '도덕과 입법의 원리 시론'에서 효용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런던에서 태어난 부유한 주식시장 상인으로 무역 장벽에 대한 비판과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를 저술하여 소득의 분배 방식을 설명하였습니다.